역사속의 봉인사

봉인사의 창건 연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봉선사 본말사지에
의하면 조선 초, 중기에 이미 있었던 절임을 알 수 있습니다.

봉인사 사리탑 중수기비에 보면 이조 광해군 11년에 석가법인인 불사리가 중국을 통하여
이 땅에 들어 왔고 이듬해인 광해군 12년에 부처님의 위신력을 빌어 왕세자의 복과 명을
빌고자 태실을 조성하고 부처님 사리탑을 세웠습니다.
그 후 이곳 봉인사에서 주석 하시던 풍암 취우대사께서 탑 주위를 닦고 중수하신걸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 한말 일제의 통치하에 봉인사 불사리탑은 일본으로 반출 되었고 절도 전소되어
폐사가 되었습니다.

1979년 대한 불교 원효종의 원로이신 한 길로 스님께서 폐사가 된 절을 다시 일으켜
교화 하리라는 원력을 갖고 봉인사를 재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도량 확장 공사도중 땅에 묻혀 있던 풍암 대사의 비석이 발견 되었고 비문에 의해 봉인사의
사리탑에 대한 내용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소문 끝에 봉인사 불사리탑이 일본 오오사카 미술관 정원에 전시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1983년부터 당시 소유주에게 편지와 사람을 보내어 탑의 반환 요청을 시작하였습니다.
봉인사의 재건은 옛 봉인사의 역사를 이음과 동시에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불교 문화의
창조
를 위한 시작이기에 탑의 반환 교섭은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탑은 단순한 미술품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봉인사에서 살다가신 옛 어른들의 정신이며 탑의 주위를 돌며 현세의 복덕과 내세의
안락을 발원하였을 수 많은 신남신녀의 정성과 얼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더욱 간곡하게
반환을 요구 하였습니다.
정부나 외무부에서는 그런 탑이 있는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그러나, 일본측 소유주쪽에서는 전혀 반응을 하지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당시 대한 불교 태고종 법륜사 조실이신 덕암 큰스님께서 불적 성지순례차 스리랑카를 방문하시던중 바지라寺의 방장격이신 나라다스님으로 부터 부처님 진신사리를 기증 받아 오셨고 그 중 1과를 봉인사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 있는 옛 봉인사탑과 유사한 모양의 탑을 조성하여 1984년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던중 1987년 봉인사 불사리탑의 일본 소유주인 이와다 센소가 작고하게 되었고 그의 유언에 따라서 탑은 원 소장지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외무성으로 부터 우리의 외무부에 이런 의사를 알려왔고 우리 정부에서는 당시 문화재 전문위원이신 황 수영 박사께 이 일을 전담케 하여 탑의 환수를 추진 하였습니다.

황 박사께서는 탑 뿐만 아니라 개인이 따로 소장하고 있던 탑 안의 소장물인 불사리와 사리합도 함께 돌려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래서 구 한말때 반출 되어 나갔던 사리탑 일체가 돌아온 것입니다.
모든 문화재는 원 위치에 돌려져야 한다는 유네스코 협약에 따라 민간 차원에서 돌아온 최초의 유물이 된 것입니다.

결국 봉인사의 꾸준한 반환 교섭이 성과를 거둔 셈 입니다.

그러나 탑은 정부를 통하여 들어왔고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 받아 보물 928호로 지정되어 국립중앙 박물관 뜰에 전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문화재 관리국에서는 탑의 원 소재지인 봉인사를 방문하여 탑을 복구하는데 쓰일 바닥돌과 왕세자의 태실등을 국립 중앙 박물관으로 실어갔고 봉인사에서는 신앙의 대상이신 불 사리만 이라도 돌려 달라는 요청을 하여 부처님 진신사리만 돌려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리를 담는 사리합중 수정으로 된 사리병뚜껑을 열지 못해 그 병과 함께 인수해서 새로 조성한 모조탑 안에 안치하게 된 것입니다.